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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셸리 케이건, 박세연 옮김 본문

일상의 철학

죽음이란 무엇인가 - 셸리 케이건, 박세연 옮김

온화수 2013. 8. 27. 14:50

그렇다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영혼과 육체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면, 죽음이란 그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사건이다. 육체가 사라지면 영혼에 더 이상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영혼은 더 이상 육체를 조종하거나 명령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이원론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육체적 죽음 이후에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킬 수 있다. -p.30


이원론자는 육체의 존재는 물론 영혼의 존재도 인정한다. 물리주의자는 육체만 인정한다. 그렇다면 육체는 두 관점의 공통분모다. 그리고 두 관점이 갈라지는 지점에 영혼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받아들일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는가?" -p.42

 

 

우리는 가치 있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 가치 있는 것을 가져다준다는 사실 때문에 가치 있는 것, 그리고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

직업은 어디에 속하는가? 직업은 분명히 가치가 있다. 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돈 역시 가질 만한 가치가 있다. 돈이 있으면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스크림은? 먹을 때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자,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즐거움은 왜 가치가 있는 걸까? 여기서부터 대답은 갈라진다. 우선 이런 대답이 가능하다. 즐거움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들은 오직 도구로써, 즉 최종적인 즐거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가치가 있었다. 반면 즐거움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철학자들은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도구적(instrumental)' 가치라고 하고, 목적으로서의 가치를 '본질적(intrinsical)' 가치라고 부른다.

좋은 것과 나쁜 것들로 이뤄진 목록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그것들 대부분 도구적인 가치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들을 통해 가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목록상 나쁜 것들 역시 대부분 도구적 차원에서 나쁜 것이다. 가령 질병은 왜 나쁜가? 병에 걸리면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질병은 즐거움을 빼앗고 고통을 안겨준다. 그리고 계속해서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돈을 벌 수 없도록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존에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들도, 엄밀히 말해 도구적 차원에서 좋거나 나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것과 행복의 본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우리는 도구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그것 자체로 가져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어떤 것들이 그것 자체로 가져야 할 가치가 있을까?"

앞서 살펴봤듯이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자연스런 답변은 '쾌락'이다. 거꾸로 그 자체로 피해야 할 것은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쾌락은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고, 고통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더 언급하자면, 우리는 얼마든지 도구적 가치(또는 비가치)와 본질적 가치(또는 비가치) '동시에' 가질 수 있다. 가령 일을 하면서 나는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즐거운 느낌 때문에 더욱 열심히 일한다. 그렇다면 즐거움은 본질적 가치인 동시에 도구적 가치다. 좀 더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보자. 난로 위에 앉으면 화상을 입는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화상을 입지 않도록 난로를 조심하게 된다. 여기서 고통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지만, 동시에 '도구적인' 의미도 있다(앞으로 화상을 입지 않도록 주의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들 사례에서 우리는 본질적 가치(또는 비가치)와 도구적 가치(또는 비가치)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질적인 가치와 도구적인 가치 중 하나만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행복의 본질을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우리는 본질적 가치(또는 비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도구적 차원에서 좋고 나쁜 것들은, 그것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본질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 때문에 그런 가치(또는 비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철학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질문은 "무엇이 그것 자체로 가질 만한(또는 피해야 할) 가치가 있는가?"하는 것이다. -p.354~355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즉 가치 있는 모든 목표들을 추구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는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인지 결정해야 하는 추가적인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비로소 잘못된 목표를 세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위험으로부터 우리는 결코 자유롭지 않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에 직면해 삶을 신중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p.431


이 세상이 얼마나 풍요로운 곳인지, 얼마나 많은 선물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지,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감안할 때, 그리고 그런 일들을 제대로 해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감안할 때,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목표를 다시 선택하고, 다양한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 두 번 세 번 노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삶은 우리에게 새 출발을 위한 기회를 주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여유가 없으므로 우리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최대한 주의해서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이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살아가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내 인생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어떤 목표를 선택해야 할까?"

솔직히 말해서 이런 질문에 대해 여러분께 대답을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에서 어떤 것들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묻는 것은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어떤 목표가 가장 가치 있고 보람 있으며 의미 있는 것인가?" 이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p.432~433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에 직면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러면 이렇게 답할 수 있다.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기에 우리 인생을 가능한 많은 것들로 채워 넣어야 한다. 할 수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축복을 누려야 한다."

지극히 평범한 답변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생각을 실제로 실천에 옮기기 위한 거시적 차원의 전략이 적어도 두 가지는 있는 듯하다. 첫째, 목표가 너무 높으면 그만큼 실패의 위험도 높아지는 위험을 항상 기억하는 것이다. 이 말은 현실적으로 충분히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선택하라는  뜻이다. 또한 이 전략은 음식, 우정, 사랑, 섹스 등 일상적으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에 집중하라는 의미다. "내일이면 늦으므로. 바로 지금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자!"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전략이다. 우리가 내일까지 살아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현실에서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에 집중함으로써 우리의 인생을 가능한 많은 것들로 채워 넣어야 한다.

둘째,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들은 그 성취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는 것이다. 첫 번째 전략의 문제점은 쉽고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목표들만 추구하다 보면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가치를 얻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의 인생은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로만 가득하게 될 것이다. 반면 이 두 번째 전략은 인생에서 정말로 가치 있는 것들은 실패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가령 여러분이 지금 소설을 쓰고, 교향곡을 작곡하고,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부양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하자. 이런 목표들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이뤄낼 수 있는 가치 있는 것이다. 성공 가능성은 낮지만 그 가치는 높은 성취들로 채워진 인생은, 성공 가능성은 높지만 그만큼 의미 없는 즐거움으로 가득찬 살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신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삶을 원하는가?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순간의 쾌락으로 가득한 삶인가, 아니면 의미 있는 성취로 이뤄진 삶인가? 네게 약속하노니 어떤 삶을 선택하든 간에 너는 그것을 이룰 것이다." 그럼 여러분들 대부분은 후자의 삶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성취를 추구하는 가치 있는 삶은 실패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가령 후세에 길이 남을 문학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했지만 10년 동안 작품을 완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20년 후에 결국 그 결심을 포기하고 만다. 이제 그 시간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또는 회사를 세우고 오랫동안 열정을 바쳤건만 회사는 결국 파산을 맞이하고 만다. 이게 뭔가?

그렇다면 무엇이 올바른 전략일까? 이 질문에 여러분은 '세 번째 전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즉, 일상적이고 가치 있는 목표들을 적절한 비율로 '혼합한' 세 번째 전략이 가능하다. 그리고 세 번째 전략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인생을 보다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어느 정도 중대한 성취를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생에서 자신이 뭔가를 얻었다는 확실한 성취감을 위해 일상적인 목표들도 적절한 비율로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세 번째 전략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과연 어떤 것이 '올바른' 조합인가?" 그러나 여기서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세 가지 전략의 공통적인 기반, 즉 삶 속에 가능한 많은 것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타당한지 따져보고자 한다. 거대한 선을 추구하는 삶, 사소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 두 가지를 혼합한 형태의 삶 중 어느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든지 간에, "더 많은 것들을 채워 넣을수록 인생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은 과연 진실일까? 다다익선(多多益善)이 항상 진리인가? -p.433~435


나는 사후에 계속해서 존재할 의미 있는 성취를 일궈낸 삶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오랫동안 남게 될 뭔가를 남기고 간다면 더욱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이다. -p.444

 

죽음이란 무엇인가
국내도서
저자 : 셸리 케이건(Shelly Kagan) / 박세연역
출판 : 엘도라도 201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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