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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요양소
노인은 팔십사 일 내내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처음 사십 일까지는 한 소년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사십 일이 지나도록 물고기를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노인이 이제 정말 살라오(Salao, '운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스페인어_옮긴이)에 빠지고 말았다고 했다. 노인의 운이 다할 대로 다했다는 것이다. 소년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다른 배로 옮겼고, 그 배는 바다로 나간 첫 주에 큼직한 물고기를 세 마리나 잡았다. -7P 나는 미용 실기 시험에 4번을 낙방했다. 5번째 시험을 봤는데 내일 결과가 나오지만 불확실하다. 중반까진 나름 능숙했는데 중반 이후 큰 실수들을 했기에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으니까. 운 좋게 붙으면 정말 감사한 거고, 떨어지면 다시 매진할 수밖에. 노인은 ..
밑줄 "나는 잠수하는 모든 이를 사랑한다. 어떤 물고기도 표면에서는 헤엄을 칠 수 있다. 하지만 5마일도 넘게 내려가려면 고래 정도는 되어야 한다. …… 세계가 시작된 이래 사유의 잠수자들은 충혈된 눈을 하고서 표면으로 되돌아왔다." 멜빌이 '사유의 잠수자들'의 운명처럼 말했던 그 고래를 나는 이 책에서 느낀다. 삶과 죽음, 이성과 광기가 골려 있는 아슬아슬한 선 위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사상가의 초상 말이다. - 38P 황금에는 도금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위대한 사건은 소란스럽지 않다. 분출하는 화염과 시커먼 연기는 사람들의 눈을 빼앗고 싶은 거짓 불개들에게나 필요한 것.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듯, "소란과 연기가 사라지고 나면 별로 일어난 일도 없지 않던가." 그 속에서는 고뇌하는 영웅조차 삼류 배우에..
밑줄 이렇게 인간성을 통찰력 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유용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불리한 점은 이런 관점을 다를 경우 친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와 마찬가지로 철학적 염세주의자였던 샹포르는 그런 문제를 넌지시 드러냈다. "도덕적이고 고결한 태도로, 합리성과 진실한 마음을 갖추고, 관습이나 허영이나 격식 같은 상류사회의 소도구 없이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만 만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렇게 결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멍청하고 허약하고 흉물스러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우리는 결국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이책 156P 나의 가치관이 분명하면, 부딪힘이 발생한다. 내가 아는 것이 이런데, 그것과 다르면 피곤해지니까. 내가 아는 것을 강요하지는 않지..
책의 도도한 인상을 허물어준 책이에요. 학습 목적보다는 독서에 관한 입장에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거나, 소설이라면 모를까 비소설도 처음부터 읽어야 한다거나, 그런 편견을 깨트려요. 저자가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고 자신의 독서 방법을 예를 들어요. 그래서 읽는데 강요하지 않는 듯해서 불편하지 않고요. 독서는 재미없으면 덮어도 되고, 한 번에 여러 권을 읽어도 되고, 책에 밑줄 박박 치며 낙서해도 되고, 책에게 신봉하지 말라는 말을 주로 합니다. 다만 나의 세계를 넓히기 위한 독서도 필요하다고 하는 내용도 있어요. 소설가 김영하씨가 소설을 읽기 어려운 이유는 뇌도 근육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그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저는 책을 신봉하지는 않아요. 과거엔 숭배했었..
법정스님의 삶을 증언과 문헌을 취재해서 쓴 백금남님의 장편 소설이다. 속세에서의 어린 날부터 입적하시기 전까지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다. 법정스님의 세속 이름인 재철이라는 아이의 환경과 삶, 젊은 날 중이 되기 위해 가족과 친구들과의 이별, 스쳐가는 인연들, 세속의 끈인 글만은 놓지 않았던 그, 종교를 넘나드는 진리의 인연, 시인 백석의 연인 나타샤와의 만남, 안거 중이라 못 찾아뵙던 어머니의 장례식, 법정의 죽음, 인연의 생성과 소멸 사이에서 발현되는 진리의 언어들. 400쪽이 넘는 소설을 상상하며 읽었더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럼에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나의 글쓰기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는데 법정스님의 삶을 통해 힌트를 받았다. ㅡ죽음이 무엇일까. 아무리 높은 선지식을 얻었다고..
작가가 명상과 깨달음을 위한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적은 51편의 산문이다. 나는 심리와 철학, 종교, 지혜에 관한 것들에게 끌린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명상을 통해 알게 되고, 무언가 한 단계 발전해간다는 느낌을 체험하고 나서, 더더욱 정신적인 것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류시화라는 작가는 비범한 인물이다. 일반적 시선으로 이 책을 바라보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을 수 있다. 애초에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겠지만. 세속과 탈속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존재. 그 혼란을 바탕으로 명상을 하고 글을 적는 사람. 그런 사람이 류시화다. 이 책은 가벼운 경전 같은 느낌이다. 어떻게 살아야 생명으로서 존엄하게 잘 사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을..
이 책을 산지는 반년이 넘었다. 베스트셀러에 목 메진 않지만, 어떤 책이 사람들을 자극하나 확인하고 싶어 서점에 가면 늘 살펴본다. 반 년 전 외국 소설 부문에 이 책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여전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는 에세이를 읽어본 적은 있다. 가끔 테드에서 강연 올라오거나, 그의 기사들을 관심 있게 살펴볼 뿐이었다. 이 책을 사놓고 덮게 된 이유는 번역된 문장이 부자연스러워서 이해하는데 걸리적거리는 게 많았다. 철학자라서 전문 용어가 많은 걸까,하고 살펴보니 그리 어려운 용어는 없다. 문장이 부자연스럽지만, 내가 참을성이 없던 탓도 있었다. 일주일 전 천천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어느 문장에 내 맘을 사로잡았고, 나는..
저는 소설을 즐겨 읽지 않습니다. 책 읽기는 취미라고 할 수 있는데, 소설은 뭐랄까. 제게 너무 어려워요. 경제학이나 사회학, 심리학, 철학 서적들은 길어도 집중력 있게 읽어나가는데. 소설은 계속 상황을 상상해야 해서 머리도 아프고 명쾌하지 않다랄까요. 그런 의심이 소설 읽는 내내 자꾸 올라와서 끝까지 읽기가 참 힘들어요. 문학적 글쓰기는 잘하고 싶으나 문학은 멀게만 느껴지는. 그 정도의 수준이어서 이 책에 대해서 뭐라고 언급하기가 머뭇거려지네요. 저는 은희경 작가의 책을 처음 읽어보았는데, 개인적으로 '중국식 룰렛' 소설집은 별로라고 말하고 싶어요. 새로운 자극을 받지 못했고, 얌전한 사람들의 얌전한 이야기 같았어요. 제 삶이 평범하지 않아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방황하는 캐릭터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