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요양소

방황하는 친구, 상섭이와의 대화 본문

일상의 철학

방황하는 친구, 상섭이와의 대화

온화수 2015. 9. 13. 13:05

 

 

친구 중에 상섭이라고 있어. 걘 대학을 그저 졸업만 하고 3년간을 방황했어. 언론사며 광고 회사며 짧았던 인턴들, IT쪽에도 덤벼보기도 했고, 타지에 숙식하며 망노동을 하기도 했고, 옷 매장, 편의점, 생수 공장, 아파트 계량기 교체 등등 더 나열하기에도 벅찬,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수많은 일들을 전전했어. 그 친구가 알바를 많이 했다는 게 요점이 아니라, 참 수직적으로 격차가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스쳐간 거 같아서 신기하기도 해. 유별난 놈이야.

 

상섭은 내게 술자리에서 그런 얘길 한적이 있어. “나름 기득권이란 사람부터 밑바닥 사람들과도 인연을 맺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다 허무해져만 가더라. 기득권과 연을 맺으면, 내 스스로 그 수준이 되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멀리하게 되고, 밑바닥 사람들은 격의 없이 순수하게 대하는 것 같다가도 점점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혀갔어. 가령, 부인을 팼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술자리에서 한다던가...”

 

 

 

 

위 얘기 말고도 그 날 있었던 상섭의 말들의 종합해 보면 이랬을 거야.

 

상섭인 이도저도 아닌, 어딘가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기 시작했어. 위로도, 아래도, 갈 수 없어 괴로워하는 위치. 위로 가려하면 그가 갖고 있는 피해의식이 드러나고, 아래를 이해하려 하면 이해할 수 있는 그릇이 못 된다는 거지.

 

상섭은 최근 밑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려 하지 않으며, 세상을 관조하고 있어. 길게 일해도 그닥 오르지 않는 돈을 받으며, 현재에 만족하는 거지. 내가 상섭에게 열정적이지 않다고 치열하게 좀 살라고 뭐라고 했었어. 근데 그러다가도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미안해지는 거야. 문득, 상섭같은 류는 한국에서 살면 안 되나?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도 한국에서 저렇게 산다면 류보다는 종이라 불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친구를 위해 한말이었는데. 상섭은 정신이 자유롭고 싶어 막 다른 꾸는 좀 유별난 애야. 배 곪는 소설가가 되고 싶대. 참 허무맹랑한 꿈이지. 지가 문창과를 나오길 했어 간판 있는 대학을 나오길 했어. 한국 사회를 모르는 변덕부리는 어린 애지.

 

나는 상섭이가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야. 오르려 해야지, 쟤는 자꾸 왜 아래로 내려가려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어. 내가 전에 물어봤더니 깊어지려 한대나? 참 시덥잖은 얘길하고 있어. 돈이 최고지. 나중에 후회한다 저거.

'일상의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별 후 스침  (2) 2015.10.12
도망쳐도 돼  (0) 2015.10.08
5년의 언어  (0) 2015.07.29
형. 닭다리 안 먹어?  (2) 2015.07.14
선진국이 되려면 아마도  (0) 2015.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