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요양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사전> - 베르나르 베르베르 본문
이 책은 <개미> <타나토노트> <뇌> <나무> 등을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으로, 열네 살 때부터 써온 혼자만의 노트를 책으로 엮은 작품입니다. 그의 마르지 않는 창작의 원천으로 스스로 떠올린 영감 및 이야기들, 발상과 관점을 뒤집어 놓는 사건들, 인간과 세계에 대한 독특한 해석들을 담았습니다.
책을 구입한 시기는 작년이었어요. 중간 중간에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몇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 읽게 됐네요. 책이 제 지적 수준에 비해 무척이나 두꺼워 읽기 버거웠지만 383가지 주제로 백과사전처럼 나뉘어져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네요. 책의 이런 특성 때문에 한 눈 팔다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방해되는 건 없었어요. 단, 불편한 게 있었다면 무겁고 두꺼워 지하철에서 서서 보기에 굉장히 불편했다는 점...
그래도 그 모든 환경을 박차고 불편함을 거의 못 느낄만큼 좋은점으로 불편함을 상쇄한 책이었어요. 인간과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사유하는 걸 좋아라하는 저에게 나름 충격을 준 책이죠. 일상에 치이다 보면 자신이 보려고 하는 것과 보이는 것만 보기 때문에 다양한 생각과 지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이 책은 이 책 하나만 들여보는 것만으로 정말 다양한 세계, 우리가 알지 못한 일상에서의 촉수들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책을 읽다보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다른 책도 어떤 가치관에서 써내려갔는지 알 수 있고, 아직 쓰지 않은 작품의 아이디어도 그 속을 조금은 훔쳐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 책의 저자가 자기 입으로 직접 자기 상상력의 원천이라 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느낀 아쉬움은 앞쪽에 호기심 그득한 다양한 내용이 나오다가 초중반부터 중반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신들의 얘기만 쭈우우우우욱 나와 지겹기는 했어요. 신들에 대한 얘기가 지겹다는 게 아니라 다양한 얘기를 듣고 싶은데 몰려 있다보니 조금 졸려웠습니다. 더구나 다른 내용에 비해 생각을 하게 하는 글 보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글들로 느껴져서 잠시 한 눈을 좀 팔았습죠.
이 책을 읽고 난 뒤 최종 소회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잖아요. 그 말뜻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준 책이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의심을 품게 하는 약 같은 병(?)을 준 책입니다. 다른 세계에 오늘로써 한 발짝 다가선 것 같아요. 왠지 오늘 밤 상상력 이상의 능력으로 외계인과 접선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밑줄
<생각의 힘>
인간의 생각은 무슨 일이든 이루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1950년대에 있었던 일이다. 영국의 컨테이너 운반선 한 척이 화물을 내리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한 항구에 닻을 내렸다. 포르투갈산(産) 마디라 포도주를 운반하는 배였다. 한 선원이 모든 짐이 다 부려졌는지를 확인하려고 냉동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가 안에 있는 것을 모르는 다른 선원이 밖에서 냉동실 문을 닫아 버렸다. 안에 갇힌 선원은 있는 힘을 다해 벽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배는 포르투갈을 향해 다시 떠났다.
냉동실 안에 식량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선원은 자기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힘을 내어 쇳조각 하나를 들고 냉동실 벽 위에 자기가 겪은 고난의 이야기를 시간별로 날짜별로 새겨 나갔다. 그는 죽음의 고통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냉기가 코와 손가락과 발가락을 꽁꽁 얼리고 몸을 마비시키는 과정을 적었고, 찬 공기에 언 부위가 견딜 수 없이 따끔거리는 상처로 변해가는 과정을 묘사했으며, 자기의 온몸이 조금씩 굳어지면서 하나의 얼음 덩어리로 변해 가는 과정을 기록했다.
배가 리스본에 닻을 내렸을 때, 냉동 컨테이너의 문을 연 선장이 죽어 있는 선원을 발견했다. 선장은 벽에 꼼꼼하게 새겨 놓은 고통의 일기를 읽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그게 아니었다. 선장은 컨테이너 안의 온도를 재보았다. 온도계는 섭씨 1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은 화물이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에서 돌아오는 항해 동안 냉동 장치가 내내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 그 선원은 단지 자기가 춥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었다. 그는 자기 혼자만의 상상 때문에 죽은 것이다. (311쪽)
<연대의식>
연대의식은 기쁨이 아닌 고통에서 생긴다. 누구나 즐거운 일을 함께한 사람보다 고통의 순간을 함께 나눈 사람에게 더 친근함을 느낀다.
불행한 시기에 사람들은 연대 의식을 느끼며 단결하지만, 행복한 시기엔 분열한다. 왜 그럴까? 힘을 합해 승리하는 순간, 각자 자기 공적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저마다 자기가 공동의 성공에 기여한 유일한 공로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서히 소외감에 빠진다.
친한 사람들을 갈라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공동의 성공을 안겨 주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가족이 상속을 둘러싸고 사이가 벌어지는가? 성공을 한 다음의 로큰롤 그룹이 함께 남아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얼마나 많은 정치 단체들이 권력을 잡은 후 분열하는가?
벗들과의 우정을 간직하려면, 자기들이 성공한 일에 대해 이야기 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실망한 일, 실패한 일을 자꾸 들먹이는 편이 낫다.
어원적으로 보면, <공감sympathie>이란 말은 <함께 고통을 겪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soun pathein>에서 유래한다. 마찬가지로 <동정compassion>이란 말 또한 <함께 고통을 겪다>라는 뜻의 라틴어 <cum patior>에서 나온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순교자들을 가리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도 그런 것과 관계가 있다. 저마다 상상 속에서나마 골고다의 언덕이나 선구자들의 고난을 겪게 함으로써, 공동체의 끈끈한 연대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어떤 집단에 응집력과 결속력이 건재하는 것은 그 골고다의 언덕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318쪽)
<장거리 경주>
그레이하운드와 사람이 장거리 경주를 하면 언제나 개가 먼저 들어온다. 몸무게에 비례해서 생각해 보면 그레이하운드의 근력은 사람보다 나을 게 없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그레이하운드와 사람이 똑같은 속도와 달려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경주에서 이기는 쪽은 언제나 그레이하운드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은 달리면서 줄곧 결승선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헤아린다. 목표를 가늠하느라고, 또 목표가 얼마나 남았느냐에 따라 의욕이 부침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한다. 장거리 경주에서는 도달해야 할 목표를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앞으로 나아갈 생각만 해야 한다. 자꾸자꾸 나아가면서 그때 그때에 맞게 행로를 수정하면 된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목표에 도달하게 되고, 경우에 다라서는 목표의 초과달성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480쪽)
<지능검사>
지능 검사는 그 검사를 만든 사람들의 정신과 동일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602쪽)
'책 사유 > 소설n시n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변신.시골의사> - 프란츠 카프카 (0) | 2014.09.28 |
---|---|
<김수영 전집 1 - 시> - 김수영 (0) | 2014.08.04 |
<개밥바라기별> - 황석영 (0) | 2014.07.06 |
<순간의 꽃> - 고은 (8) | 2014.05.28 |
<데미안> - 헤르만 헤세 (11) | 2013.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