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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

씨유에서 첫 편의점 알바를 시작.

온화수 2012. 9. 3. 19:23

  


집에서 미래를 위해 준비하려니 책을 구입할 돈도 없고, 그렇다고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엔 제 자신이 부끄러워서 알바를 시작하게 됐어요. 마침 대학교 내의 CU(구 패밀리마트) 중앙 도서관점에서 주간에 구하길래, 알바 끝나면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척 하려 할 심산이었죠.


편의점 알바는 처음이었지만 지난 금, 토요일에 2시간 정도씩 교육을 받아서 계산하는 법 정도는 익혀두었어요. 하지만 오늘이 정식적인 첫 출근이고 대학교의 개강날이라니 손님이 얼마나 들이닥칠까 걱정이 많았죠. 하지만 이왕 하는 거 '피하지 말고 부딪혀보자!'라는 마인드로 거침없이 손님들을 맞이했어요. 


주말 교육 받을 때 많았던 실수가 한 두번으로 줄고, 2시간 정도 지나 점심 시간이 되니 저는 어느새 계산의 달인이 돼 있었어요. 점장님께서 "다른 편의점에서 알바를 안 해봤으니 이 정도 와도 손님이 많은 거 모르겠다." 라고 얘기하셨는데, 네. 저는 손님이 많다고만 들었지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손님들은 항상 편의점 안에 상주해 계셨고, 자리에 앉아본 게 합쳐서 5분도 안 되는 것 같아요.


편의점 알바가 매우 재밌네요. 차라리 바쁘니까 점장님 눈치도 덜 보이고(눈치 주실 분도 아니지만), 시간도 빨리 가니까 좋았어요. 다양한 사람들에게 친절함을 베풀 수 있어 좋네요. 편의점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도 손님들이 기뻐하실 걸 생각하니 재밌고요. 드디어 천직을 찾은 것만 같아요. 


학생이라는 마인드로는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안 마케팅부 인턴, 정말 나와 성격이 맞지 않아 지옥 같았지만 기자들의 고충을 알게 된 언론사 인턴, 낯선 아저씨들과 숙식하며 물류창고에서 하는 막노동, 가스를 많이 먹어 고생했던 아파트 가스 계량기 교체 알바, 배달 갔는데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6층이 있단 걸 처음 안 마트 알바, 철판을 키워보겠다며 친구들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제대 후에 한 전단지 알바 등. 이 외에도 크고 작은 경험들을 했지만 이번처럼 저에게 딱 맞는 옷이라고 생각하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저는 서비스업이 잘 맞나봐요. 당연히 저는 제 자신의 이런 장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25년 살면서 서비스업 관련 경험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아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지 경험을 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겠죠. 대단한 기업의 인턴 같은 경험도 좋지만, 이러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소한 경험 하나하나도 자신의 장단점을 발견하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느끼고 작은 것에도 배울점이 있다면, 이런 경험 하나하나가 미래의 제 자신을 튼튼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일이 기다려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