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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여름이라 그나마 수월했던 고추 따기. 본문

일상의 철학

막바지 여름이라 그나마 수월했던 고추 따기.

온화수 2012. 9. 9. 15:50


이제 여름은 가고 있고 가을이 오고 있네요. 그래도 여름은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농사꾼들에게 마저 남은 따사로운 햇볕을 주고 있네요.


엄마 혼자 고추를 따시고 계셔서 마음이 걸려 고추밭으로 발걸음을 했어요.




우리 하우스 바깥 쪽인데요. 동네 강아지 녀석들 짝짓기 장소를 물색 중이네요. 제가 계속 쳐다 보니까 강아지 녀석들 의식하더라고요.


되게 웃긴 게, 불륜 커플처럼 집 앞에서 안 그러고 꼭 집 뒤에서 주위 눈치 보며 적절한(?) 장소를 찾네요.




고추는 빨간 걸 따야 해요. 파란 건 따로 고추장에 찍어 먹을 때는 몇 개 따지만요.




흠. 멀쩡한 걸 찍었어야 하는데 오른쪽 파란 고추가 조금 썩었네요. 이런 건 따서 바닥에 버려요.


빨간 고추를 저 꽁다리 반대쪽으로 꺾으면 '툭'하고 깔끔히 따져요(사진 상 위쪽으로). 괜히 비틀고 그러면 꽁다리가 갈라지고 잘못하면 멀쩡한 가지 전체가 뜯어질 수도 있어요. 


그리고 고추 잎파리에 하얀 게 있는데 농약이 뭍은 거에요. 농약 뿌린다고 거부감 드실지 모르겠지만, 농약을 뿌려도 거의 다 썩어버려요. 고추를 따면서도 정말 썩은 게 많다고 느꼈어요. 농약을 안 치면 정말 먹을 게 없어요. 벌레들은 배 부르겠지만.


무기농으로 하려면 시간 날 때마다 벌레들을 잡아줘야 하는데 집에서 농사만 지어도 어렵고, 부모님들은 직장에 따로 다니셔서 농약을 안 뿌릴 수가 없어요.




한창 거들고 있는데 이상하게 자루가 가벼운 거에요. 안에 보니까 자루가 뚫려 있는 게 아니겠어요..


엄마는 막 웃으셨어요.


저는 다시 바닥에 떨어진 거 주워 담으러..




유기농은 아니지만 저희 집 고추 색과 모양,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이렇게 자루에 담아서 손수레(구루마)에 싣고 집으로 향했어요.





이렇게 고추를 물에 씻어서 창고 안이나 집 안에 말려요.


나: "왜 고추를 햇볕에서 안 말려?"

엄마: "집에만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비 오면 어떡하니."

나: "아..."


엄마가 햇볕에서 말리는 게 제일 맛있다고 하는데 관리할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실내에서 말리고 있다고 말씀 하셨어요.


고추 건조기가 따로 있다고 하는데 그걸 이용하면 더 맛이 없어져서 사용하지 않는다고도 하셨어요. 역시 자연스러움이 최고겠죠.




20일 정도 말린 고추의 모습이에요. 처음 말릴 때는 꽁다리를 떼지 않고 말리다가, 거의 다 말랐다 싶으면 꽁다리를 떼요. 왜냐하면 중간에 꽁다리를 떼버리면 세균이 들어가서 금방 상해버린대요.


이제 다 마른 고추를 갈아내면 고춧가루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