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요양소

엄마는 김장철, 아빠는 긴장철 본문

일상의 철학

엄마는 김장철, 아빠는 긴장철

온화수 2015. 11. 14. 13:39

절여진 집마다 화가 피었다. 화 피는 집에 파란 배추가 비치어, 젖은 앞머리처럼 축 쳐진 집들은 결박된 남편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니 아빠는 뭐한대니..."


엄마가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성토를 했다. 아빠에게 부탁한 배추가 없다며. 우리는 배추밭이 있다. 엄마가 아빠에게 아침에 따달라고 부탁을 하고 확답을 받았다고 했다. 이미 주변 아주머니들과 김장 일정은 잡아놓았는데 배추가 보이질 않으니 흥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니 아빠는 말만 번지르르 해. 말이나 꺼내지 말던가."


비가 추적추적 추적 60분의 음산한 분위기처럼 쏟아졌다. 엄마는 야밤에 배추를 따겠다며 중무장을 하고 하우스로 향했다. 나는 엄마를 말렸다. "비 오는 데 어딜 가. 내일 아빠한테 말해." 엄마는 아빠를 어찌 믿느냐며 기꺼이 부엌칼과 우산을 들고 나섰다. 나는 엄마에게 "알아서 해. 몰라."라며 무심하게 화를 냈다.


마음이 편치 않아 승용차 뒷자리에 파란 천막을 깔고 엄마에게 향했다. 가는 길이 비포장 도로라 질고 캄캄했다. 눈 앞이 아득해 하우스 도착 전 코너에서 상향등을 켰다. 그러자 칠흑을 뚫고 엄마가 칼을 들고 기다리고 서있었다. 섬뜩했다. 엄마는 자기를 닮아 맘 약한 내가 올 것을 예측했던 것이다.


하우스지만 비가 흘러 들어와 신발에 진흙이 뒤채었다. 배추는 베어내고 무는 끌어 앉았다. 비와 함께 뽑은 것들을 승용차 뒷좌석에 실었다. 옮기는 동안 엄마는 아빠에 대한 원망을 하소연했다. 나는 아버지도 사정이 있겠지,라며 이해해보려 했지만, 그녀의 편을 들었다.



"그래도 아들이 고맙네."


집에 돌아오니 늦둥이 남동생이 학교에서 배추와 함께 돌아왔다. 엄마는 내게 부수적인 김장 재료가 없고 내일 김장을 도울 아주머니들의 맥주가 없다며 마트에 가자 했다.


남동생, 엄마와 함께 배추 실었던 차를 끌고 마트로 향했다. 김장 재료와 군량, 하이트 흑맥주 스타우트 피쳐를 들고 우리 진영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남동생, 나는 삼시세끼를 보며 유해진의 유쾌함에 깔깔 웃어댔다. 엄마는 다듬은 쪽파보다 안 다듬은 쪽파가 싸다며 고른 탓에 하나하나를 까야했다. 엄마의 전략적 참모인 나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대파는 까기 쉬운데, 쪽파는 얇아서 까기 어렵고, 한 대당 양이 얼마 없어서 백 대와는 넘게 싸워야 했다. 엄마와 나는 둘 뿐이었고, 쪽파는 족히 백 대가 넘을 것이었다.


두 시간 동안 깠다.


쪽파에겐 승리했지만 시간에겐 무력했다. 시간에겐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우리 진영은 둘 뿐이었기에 백 대가 넘는 쪽파를 한 번에 상대할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울돌목처럼 좁고 빠른 유량에 한 대씩 유인하여 깔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 명백해졌다. 집안의 온도는 12월보다 냉랭했다. 오전 11시가 되자 현관 문이 열렸다. 아빠는 긴장하며 고춧가루 빻아온 걸 부엌 바닥에 호쾌하게 놓았다. 그렇지만 곧장 아빠는 적의 동태를 살폈다. 당당한 척 했지만, 오면서 내내 불안했던 게 분명하리라. 맘 약한 엄마는 고춧가루라도 빻아온 걸 보고 참으려는 듯했다. 엄마는 하소연보다 그의 위장에게 안부를 물었다.


"밥은 먹었수?"


"아니... 먹어야지."


엄마의 화는 가족 앞에서 늘 먼저 소멸하고, 가족들의 화는 엄마 앞에서 항상 먼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