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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

친구와 주말 점심을 함께한 일이 그리도 행복했다

온화수 2014. 7. 16. 18:47

지난 일요일, 고등학교때 부터 친구인 아무개와 점심을 먹었다. 포천 시내에서 만났는데, 딱히 들어갈 집이 없어, 송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만나자마자 친구는 회에 대한 찬가를 불러댔다. 


“너, 회 생각은 없니?” 

“난 괜찮아. 근데 피폭되면 어떡해. 아니, 차라리 나을지도 몰라. 어차피 이렇게 평생 살아서는 노후 자금도 없을 것 같은데. 일찍 죽으면 좋지 뭐.”


난 공수래공수거 농담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런 싱거운 농담을 나누며 가다가 역시나 마땅히 횟집 여는 데가 없을 것 같아서, 그나마 비슷한 해물탕 집을 가기로 했다. 힘들게 찾아갔으나 그곳도 아직 열지 않았다. 괜스레 무안해서 기억을 재빨리 더듬었다.


“아! 저번에 우리 엄마 입원했을 때, 병원 옆에 괜찮은 집 있었는데 가볼래?”

“그래, 가봐.”

“내가 송우리에서 유일하게 정말 맛있다고 생각하는 집이야.”

“뭐 파는데?”

“간판은 부대찌개 집이라 쓰여있는데, 삼겹살도 팔고, 제육볶음, 백숙도 팔아.”

“그래, 그럼 가봐.”

“내부는 되게 좁은데, 백숙도 토종닭 잡아서 준대.”

“그래.”


내 생각으로는 해물탕 집과 부대찌개 집과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가 지치고 더워하니 거리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드디어 도착했다. 하지만 낌새가 안 좋았다. 평소엔 열려있었을 텐데, 12~13일 쉰다고 문 앞에 소박한 글씨가 적혀있었다. 여기는 내가 가자고 해서 온 건데, 친구도 힘들어하니, 근처 문만 열린 음식점이면 그냥 들어가고 싶었다.


“그냥.. 여기 옆에 아무 데나 가자.”

“어디?”

“병원 옆에 감자탕집 있는데, 크고 시원해서 좋아. 맛도 먹을만하고.”

“거기도 닫혀있는 거 아녀?”


다행이었다. 이 집만은 열려있었다. 자리 어디 앉을까 승강이를 벌이다 메뉴판을 빨리 펼쳤다. 최대한 급속도로 메뉴를 정하고 친구는 배고픔을 숨기고 여유롭게 주문한다. 


“전골 中자리랑, 밥 두 그릇, 소주 빨간 거 하나 주세요.”


얼마 안 있어, 주문했던 음식들이 나오고, 이런저런 궁금했던 얘기를 나눈다.


“요즘 뭐. 다시 알아보고는 있어?”

“응. 내가 필요한 만큼만 돈 벌면서 여가 시간 보내려고. 대신, 책 읽고 글 쓰는 건 항상 하고.. 내가 좋아하는 거 배우려고. 기타라던가, 그림이라던가... 근데, 이해 잘 못하겠지?” 

“그런 게 어디 있어. 각자 사는 방식이 다른 거지.”

“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거 뭐냐..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다양한 걸 했잖아. 꼭 하나만 연연하란 법 있냐? 그림도 그리고, 철학도 하고, 작곡도 하고, 시도 쓰고..”


친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까지 예를 들면서 내게 힘을 주고 싶었나보다. 둘만 있었으니 낯간지러움보다는 고마움이 컸다.


한 병씩만 먹자며 마지막 한 병을 시켰다.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요즘 뭐 고민은 없냐?”

“이직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몇 년 차인데?”

“2년”

“넌 지금이 좋아? 싫어?”

“좋아.. 편하고.. 출퇴근도 가깝고.”

“난 내 시간이 줄어들면 이직 안 할 거야. 내 가치관은 무엇보다 내 시간이 중요하거든.”

“나도 지금이 좋긴 좋은데, 불안하기도 하고, 쥐꼬리니까...”


업계 얘기부터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눴는데, 우리가 어느새 이런 한탄들을 늘어놓는, 드라마 속 샐러리맨 아저씨들이 됐구나를 실감했다. 그럼에도 문득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쑥스러워서 친구에게 “아. 정말 행복하다.”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어른이 돼서는, 서로 시간 내기가 힘들다. 어쩌다 시간이 맞아서, 밥 먹으면서 이런 저런 대화 나누는 게 행복인데, 이게 쉽지가 않다. 이게 뭐라고. 남은 술의 양과 아쉬움은 반비례한다. 술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잔이 비워지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각자의 현실로 돌아가야 함을 감지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다 비워갈 때쯤 서로 급격히 대화가 줄었다. 우린, 말 대신 감정으로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