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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

아름다움은 죽어서도 남는다

온화수 2014. 7. 15. 21:30

지난 토요일, 의정부에 사는 사촌형이 오랜만에 우리집에 들렀다. 난 화장실 안에 있었고, 문 너머로 내 근황을 어머니에게 대신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큰형을 마주하자마자, 나는 밝은 표정으로 모르는 척했다. 

큰형은 "뭐하냐? 산소나 가자."라며 퉁명스럽게 나를 재촉했다. 차를 타고, 대진대 안 산소로 향하기까지 서먹하진 않았지만, 적당한 긴장감이 흘렀다.


"큰 풀만 뽑자."

"응."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 앞 꽃과 풀들을 뽑기 시작했다. 풀을 뽑는 데도 큰형은 큰형다웠다. 나는 격하게 빨리 뽑으려 하는데, 큰형은 가지런히 두 손으로 살포시 뿌리를 당긴다. 절을 하고 큰형의 아버지, 나의 큰아버지에게로 향하는 듯했다.


새로 생긴 무덤을 보며 큰형은 내게 물었다.


"너 저번에 원식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왜 안 왔어?"

"아.. 그냥.."

"왜? 바쁜 일 있었어?"

"아니. 사실.. 거기 가면 뭐하느냐고 물어들 보니까.."

"옆에 작은댁 할머니 풀도 뽑자."


큰형은 이해하는 듯 다른 말로 답을 대신했다. 작은댁 할머니께도 절을 하고, 큰아버지에게로 향했다.


"너, 큰아빠 얼굴 기억은 나냐?"

"아니.. 얼굴은 기억 안 나는데, 우리집에 있는 사진으로는 기억나. 어릴 때 기억에서의 큰아빠는 기억이 안 나."


큰아버지 산소에는 유난히 민들레가 많이 피었다. 결국 뽑아야 할 풀이지만, 왠지 이런 생각을 했다. 


'큰아버지는 아름다운 분이니까 민들레 씨가 많이들 다가왔나 보다. 젊은 날 많은 사람이 슬퍼했고, 멋진 분이셨고, 누구보다 책과 술을 사랑하셨고, 향기나는 분이셔서 풀보다는 꽃들이 큰아버지 곁에 많이들 앉아있나 보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