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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

삶의 정답이 있어?, 결핍을 사랑해야 돼

온화수 2014. 7. 16. 01:32

*너와 난 삶의 방식이 다른 걸. 너의 생각을 존중해. 하지만 난 나만의 철학이 있어. 서로의 삶을 살 수 없으면서 서로를 압박하지 말자. 다수의 방법이 모두에게 정답은 될 수 없잖아. 삶의 방법을 문제로 내서 답을 굳이 내라고 한다면 객관식보다는 주관식 아니냐. 그리고 채점하는 사람은 또 누구야. 국가가 채점하나? 아니면 이웃들 눈치로 채점하는 거야? 남들이 말하는 다수의 정답대로 간다고 쳐. 난 거기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 난 무엇보다 내 영혼과 감정을 존중하기 때문이야. 그렇다고 피해를 주겠다는 건 아니야. 모르겠어. 그냥 내 삶은 뒤죽박죽이었으면 좋겠어. 그게 그냥 나인 거 같다는 생각을 해. 슬픔은 나의 원동력이니까. 이렇게 저렇게 느낀 감정을 적으면 그게 정말 무엇보다 짜릿하거든. 약간 과장이야. 이걸 읽으면서 의문을 품었듯이 섹스보다는 덜해. 차라리 책을 안 읽었더라면, 세상에 대해 귀를 닫고 살았더라면, 내 삶은 어떠했을까란 의문이 자꾸 드는 요즘이야. 정신과 한 번 가봐야겠다 나.



*사랑은 상대가 가진 것보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봐야 한대. 그 사람의 배경, 외모 같은 스펙은 영원하지 않으니까. 상대방의 조건이 언젠가 변하면 마음도 변하게 되니까. 그렇다고 외모를 안 본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을래. 스웨덴 사상 평론가 엘렌케이가 한 말 중, 공감하는 대목이 있어. "여성에게 있어서는 연애는 언제나 영혼에서 감각으로 옮아가며, 남성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감각에서 영혼으로 옮아간다."라고. 맨날 입 바른 척해도 나도 남자니 여성의 영혼보다 감각이 우선일 수 밖에. 

나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보다 뭔가 결핍된 사람이 좋더라. 평소 씩씩하고 잘 웃지만 알고 보면 한없이 불우한 환경이던가. 뭐 그런 거. 이면에 슬픔이 있는 사람. 그걸 안고 가야 사랑 아닌가 싶네. 결핍을 사랑하면, 아픔을 사랑하면, 가진 것이 사라져도 별 개의치 않게 되니까. '혼자 소설 쓰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소설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