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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우리 엄마

온화수 2014. 11. 6. 22:07

며칠 전, 집에서 홀로 저녁을 먹는데, 엄마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

 

"오늘 공장에서 부대찌개 얻어왔다. 봐봐. 먹기 전에 떠놓은 거야. 라면 넣고 뿔면 남아서 버리게 되니까... 햄도 많지? 젊은 형제 두명 있다 그랬잖아. 두명 중 동생 은수가 부대찌개 햄이 없다고 투덜거리더라. 얼마나 찔렸던지... 사실 엄마 잘못만도 아니야. 매일 반찬이 남으니 먹기 전에 조금씩 덜었던 건데, 그날따라 잘 먹지 뭐니. 엄마 되게 미안했어. 경기도 어려운데, 남는 반찬 싸오는 재미도 있다. 반찬값이 얼마나 비싼줄 아니?"

 

맘 약한 엄마는 은수에게 미안했는지 내게 반성문 쓰듯이 토로한다. 나는 엄마를 안정시키며 할말은 하고 싶다.

 

"어. 맞아. 엄마 잘했어. 근데 다음부턴 먹고 남은 것만 가져와야겠다."

 

"그래. 그래야지. 찔려 죽는 줄 알았다."

 

엄마는 민망한지 다른 얘기로 환기시킨다.

 

"가구 공장에 여자 나 혼자야. 여자들은 힘들어서 하루만에도 도망 가고 그런다. 엄마는 손 다치고 나서도 사장이 다시 받아줬잖니. 내 발 좀 봐봐. 무좀으로 갈라지고 아까는 공장에서 쩔뚝거렸다. 외국인 애들이 나 좋아해. 샤카이가 나보고 "아줌마 어디 아파요?"라고 걱정해주더라. 외국인 애들이 자기 라인으로 오라고. 엄마가 편하니까. 걔네 생각해서 그쪽으로 가고 싶은데, 빌어먹을 공장장 때문에 죽어도 가긴 싫다. 공장장놈은 나랑 나이가 비슷한데 아직 총각이야. 애들 갈구는 거 보니 정말 성격 모났더라. 그러니 여적 혼자지... 전에는 성적인 농담 안 받아줬다고 갈구는 거야. 엄마 성격에 그런 거 받아주니?"

 

엄마는 한숨을 내쉰다.

 

"점심 시간이 30분이야. 근데 나는 10분 전에 미리 공장 사람들 밥을 차려줘. 누가 시킨 건 아닌데, 할 사람이 없으니 내가 하는 거야. 내가 타카 박다가도 화장실 청소도 하고 그래. 왜냐하면 타카만 계속 하면 지겨우니까. 전엔 화장실 청소하고 있었더니 사장이 하지 말라더라. 내가 다치고 나서 다시 공장 왔을 때, 사장이 그러더라. '아줌마 없으니 개판이에요.'라고."

 

경력이 단절된, 나이 많은 여성을, 힘든 가구 공장에서 다시 오라고 부르는 경우가 흔할까. 우리 엄마를 보고 느끼는 건, 남들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없으면 빈자리가 느껴지는 사람. 하기 싫은 일, 피하고 싶은 일을 연약하다며 피하지 않는다. 남들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이끌려서 한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어딜가서든 다양한 방식으로 빈자리를 채우는 사람이 돼야 하는구나, 엄마를 보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