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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요양소
내겐 9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2살 차이 나는 여동생도 있고. 남동생은 아직 고등학생인데, 타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다. 주말마다 집에 오면, 치킨이나 족발 같은 걸 시켜 먹는다. 지난 주말엔 치킨을 시켰다. 치킨이 도착하자 남동생은 내게 묻는다. "형, 안 먹어?" "응. 안 먹어." 난 전날 과음을 해 속을 원망하고 있었다.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집에선 맥주를 먹게 내버려둔다. 하이네캔 500미리 한 캔을 다 먹어가는데 얼굴이 아버지를 닮아 붉어짐을 너머 새카매진다. 말할 때 코가 막히는 거 보니 호흡기도 부어오르나보다. 약간 알딸딸해져서 내게 다시 묻는다. "형, 치킨 안 먹어?" "아까 안 먹는다고 했잖아." 나는 책에 집중하고 있던 터라 예민해져 약간은 쏘아붙이듯 답했다. 그리곤 바로 미안함을 ..
[기우장면_김홍도] 철학, 문학, 역사, 미술 등의 예술과 문화가 나라 발전에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생각이 우리나라에 팽배하다. 모 철학자가 그랬다.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선진 문물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서양을 넘어 우리가 없던 길을 만들려면 예술이 필요하다고. 그 시대의 감동,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현실에서 새로운 것을 적용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모든 것에 있어 고전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다. 가장 오래되고 전 세계인에게 인정 받은 공통된 감동의 빅데이터가 고전일 것이다. 대신 그 감동의 비법을 쉽게 알려주진 않는다. 읽는 눈을 키워야 한다. 그런 감정이나 흐름의 패턴을 읽고 디자인을 적용하고, 수학 공식을 만들고,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신경 안 쓰는 오래된 책장 속에서 명저를 발견했다. 조지오웰의 는 1948년에 미래를 예측하며 쓴, 사회를 감시·통제하는 빅브라더 체계를 그린 디스토피아적 소설이다. 출판사 이름을 검색해보니 영등포 신길동에 아직 있는 것 같다. 역자의 말을 쓴 날짜는 1983년 5월이다. 1984년을 야심 차게 기다리며 새롭게 번역한 게 아닐지. 책 안에 책갈피 대신 누런 신문지가 껴있다. 1984년 2월 22일 자 조선일보 사설. "저기록 이대로 두긴가 -사라예보 충격을 겪고 몇가지 당부-"라는 제목. 한문도 많고 세로로 읽게 돼 있다. 리드문만 적자면 "화끈하게 잘도 달아 오르고 잘도 식어 버리는 민족성 때문인지, 어느 분야에서건 실패를 거두면 마냥 삿대질만 하고, 고함을 지르기는 잘하지만, 진작 그 실패에 대해 냉..
"타인을 왜 이해해야 하나요?" 글을 쓰다 의문이 들었다. 타인을 이해하라고 하는데 왜 이해해야 하는지. 누구 좋아서 하는 건지. 나만 이해하려 하고 상대가 안 한다면 나만 손해가 아닌지. 단순히 누구나 할 수 있는 두루뭉술한 말 말고 설명할 수 없는지. 여러 곳에 왜 타인을 이해해야 하느냐며 질문을 올렸다. 돌아오는 답은 예상했거나 실망스러운 답변들. 근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댓글로 예의상 고맙다고 질문과 느낌을 쓰기 시작하면서 실마리를 찾아갔다. 단순히 공동체니까! 이런 말보다 구체적인 답을 원했기에 여기저기에 물어봤던 것이다. 내 나름 정의내린 실마리?는 '나 혼자만 잘 살지 않기 위해서'이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한 건, 개인적 일시적 쾌락은 줄이고 집단적 반영구적 쾌락을 늘려서..
우연이란 게 무얼까. 우리가 보통 말하는 '우연'이란 건 아무런 인과 관계없이 일어나는 일을 말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런 것 같지만 과연 완전한 우연이 있을까. 보기 불편한 전 여자친구를 어느 장소에서 보았다고 치자.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장소가 과거 함께 갔던 곳이었고, 함께 갔던 곳이 아니라고 해도 관심이 비슷해져 취향이 비슷해졌기에 가는 장소가 겹칠 수 있지 않을까. 글로 쓰면 굉장한 억지 우연 같지만, 현실에선 은근히 이런 일들이 필연처럼 일어난다. 우연과 필연의 경계가 무엇일까. 사람은 모순덩어리다. 도덕적인 잣대를 남에게 들이댐으로 자신은 위안을 얻는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당신이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절대로 어느 누구가 아니에요. 그 누..
플라톤 아카데미와 SBS 라디오가 공동 제작한 오디오북,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총 20편으로 되어 있고, 자기 전에 들으면 적당하다. 책으로 읽으면 다소 지루하거나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땐, 관련 다큐나 영화나 이런 오디오로 도움을 받고나면 지루했던 책이 비교적 수월하게 읽히기 시작한다. 이게 길다고 느껴지면 '팟빵' 어플에 들어가는 걸 추천한다. 'EBS 고전 읽기' 채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가 있는데 총 5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긴 세세하게 다루진 않지만, 중요 부분을 들려주고 풀이까지 해준다. 그래서 이해하긴 더 쉽다. 현재 폐지된 프로그램이지만, 자료는 아직 남아있는 걸로 안다. 명로진씨와 권진영씨가 개인적으로 다른 고전 읽기 채널을 만들어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위 사진은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