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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요양소
잘 안 들고 다니는 카메라와야밤에 마을 어귀를 걸었다. 우리 동네는 참 조용해서 좋다. 쓸쓸히 혼자 사시는 할머니댁 티비 소리가 멀리서도 들린다. 그래서 괜히 바라보게 된다. 마음이 간다. 저 할머니는 정말 외로우시겠구나. 나는 정말 행복한 거구나. 영원하지 않은 것,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에게 감사함을 느껴야겠구나 싶다..
지난 일요일, 고등학교때 부터 친구인 아무개와 점심을 먹었다. 포천 시내에서 만났는데, 딱히 들어갈 집이 없어, 송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만나자마자 친구는 회에 대한 찬가를 불러댔다. “너, 회 생각은 없니?” “난 괜찮아. 근데 피폭되면 어떡해. 아니, 차라리 나을지도 몰라. 어차피 이렇게 평생 살아서는 노후 자금도 없을 것 같은데. 일찍 죽으면 좋지 뭐.” 난 공수래공수거 농담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런 싱거운 농담을 나누며 가다가 역시나 마땅히 횟집 여는 데가 없을 것 같아서, 그나마 비슷한 해물탕 집을 가기로 했다. 힘들게 찾아갔으나 그곳도 아직 열지 않았다. 괜스레 무안해서 기억을 재빨리 더듬었다. “아! 저번에 우리 엄마 입원했을 때, 병원 옆에 괜찮은 집 있었는데 가볼래?”“그래, 가봐.”“..
*너와 난 삶의 방식이 다른 걸. 너의 생각을 존중해. 하지만 난 나만의 철학이 있어. 서로의 삶을 살 수 없으면서 서로를 압박하지 말자. 다수의 방법이 모두에게 정답은 될 수 없잖아. 삶의 방법을 문제로 내서 답을 굳이 내라고 한다면 객관식보다는 주관식 아니냐. 그리고 채점하는 사람은 또 누구야. 국가가 채점하나? 아니면 이웃들 눈치로 채점하는 거야? 남들이 말하는 다수의 정답대로 간다고 쳐. 난 거기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 난 무엇보다 내 영혼과 감정을 존중하기 때문이야. 그렇다고 피해를 주겠다는 건 아니야. 모르겠어. 그냥 내 삶은 뒤죽박죽이었으면 좋겠어. 그게 그냥 나인 거 같다는 생각을 해. 슬픔은 나의 원동력이니까. 이렇게 저렇게 느낀 감정을 적으면 그게 정말 무엇보다 짜릿하거든. 약간 과장..
지난 토요일, 의정부에 사는 사촌형이 오랜만에 우리집에 들렀다. 난 화장실 안에 있었고, 문 너머로 내 근황을 어머니에게 대신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큰형을 마주하자마자, 나는 밝은 표정으로 모르는 척했다. 큰형은 "뭐하냐? 산소나 가자."라며 퉁명스럽게 나를 재촉했다. 차를 타고, 대진대 안 산소로 향하기까지 서먹하진 않았지만, 적당한 긴장감이 흘렀다. "큰 풀만 뽑자.""응."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 앞 꽃과 풀들을 뽑기 시작했다. 풀을 뽑는 데도 큰형은 큰형다웠다. 나는 격하게 빨리 뽑으려 하는데, 큰형은 가지런히 두 손으로 살포시 뿌리를 당긴다. 절을 하고 큰형의 아버지, 나의 큰아버지에게로 향하는 듯했다. 새로 생긴 무덤을 보며 큰형은 내게 물었다. "너 저번에 원식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왜 ..
며칠 전에 의정부에 있는 바에 일을 하고 싶어 면접을 보러 갔었다. 이제는 어리지 많은 않은 27살에, 아무리 건전한 바라도, 주변에서 다들 말리니, 하고 싶었음에도 겁이 났다. 바텐더가 되고 싶다기보다, 좋아하는 흑인 가수들이 나오는 영상이나 주제로 한 영화를 보면서, 그 안의 분위기 있는 바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바에서 일하고 싶다. 나중에 근사한 바 차리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들었다. 신통치 않은 대학교를 나오고, 그 안에서도 나는 분위기에 잘 휩쓸렸다. 내 성격의 장점이자 단점이 주변 분위기에 변화가 빠르다는 거다. 좋은 사람들 만나면 좋은 점을 배우고, 불량한 사람들 만나면 나쁜 점을 빨리 배운다. 대학 생활하면서 난 성적에 관심이 없었다..
오래된 연필은 심이 잘 부러진다. 깎다 보면 이미 그 속에서 부러진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그리고는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럼 난 그 반대편으로 균형을 이뤄 글씨를 이어나간다. 이 연필도 늙고 몸이 성하지 못해도 많은 날 보람 있게 쓰이고 싶을 텐데. 그래야 자기 딸린 식구나 후손들도 그 연필이 좋다며 누군가의 손에 취직할 텐데. 태어난 지는 오래됐지만, 연필의 진정한 가치는 쓰임에서 시작된다. 첫 제 살을 깎아 검은 족적으로 세상을 휘갈기기 시작할 때, 우린 연필의 마음을 공감해야 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고로, 연필의 정년을, 몽당연필에서 더는 깎기 미안할 때까지 보장해줘야 한다. 이제 쉬세요. 4B 할배.